


인생에는 전환점이 몇 가지 있다. 사람마다 그 변화의 정도나 시기가 제각각이겠지만, 삶의 목표와 방향, 환경이 크게 변화하는 시점이 그러할 것이다. 우리를 찾아온 건축주는 곧 대학을 졸업하는 딸과 함께 사는 50대의 부부였다. 자녀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독립적인 제 역할을 하게 되는 시기로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되면, 아이를 향하던 모든 집중이 사라지고 오롯이 본인 자신을 위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Sketch
여행하는 인간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오노레 마르셀(Gabriel Honore Marcel)은 인류를 ‘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 스스로의 가치 있는 삶을 찾아 나서는 존재라는 것이다. 현실을 살아나가며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은 많지 않다. 여행을 떠나며 소위 힐링의 시간을 갖는 것은 그러한 시간을 공간적, 환경적 변화를 통해 찾고자 함일 것이다. 경상남도 사천 시골 마을에 위치한 이 집은 여행을 떠나는 출발점이자 다시 돌아오게 되는 회귀의 공간이자, 삶이 흐르는 순간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담아 삶의 여유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부부의 근원적인 ‘돌아갈 곳’이 되길 바랐다.





현재에 머무르게 하는 감각
우리는 이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의 변화와 흐름에 집중하고자 했다. 여행지에서는 일상에선 잠들어 있던 감각들이 깨어난다. 그리고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한 ‘지금’,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마당을 훑고 지나가는 빛과 그로 인해 움직이는 그림자의 변화, 거실을 가득 채우는 이른 아침의 빛이 저녁이 되면 노을져 거실을 물들이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공간을 훑고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좀 더 인지하고, 자연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 이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치유이자 여행지로 떠나고 돌아왔을 때 이 공간이 거주자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감각적 치유라 생각했다.





시간을 담는 두 개의 정원
본채와 별채는 남향을 향해 서로 비스듬히 마주 보며 감나무가 있는 작은 정원을 끼고 있고, 본채의 북쪽으로는 낡은 소 외양간이 담장을 따라 둘러싸고 있었다. 남향에 위치한 정원은 작지만 아침 햇살이 담기는 정원이었고, 본채의 북쪽의 정원은 오후부터 저녁까지의 노을빛이 드는 정원이었다.
정원에 대한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다. 오래된 외양간과 담장을 모두 털어낼 것, 대지 내에 2대의 주차공간을 둘 것. 대지와 도로가 길게 맞닿는 부분에 주차공간을 배치해 정원의 면적을 최대한 확보했다. 주차공간과 함께 정원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를 배치하고 큰 정원을 두 공간으로 나누는 벽과 기둥을 세워 진입로를 만들었다. 넓은 정원을 한눈에 보여주지 않고, 진입로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메인 정원의 공간을 분리했다. 진입로 벽을 따라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을 열주 형태로 세워 기둥의 그림자가 시간에 따라 다르게 벽에 맺히도록 했다. 집에 걸어 들어가는 첫인상은 이 기둥의 움직임과 갈대의 움직임과 함께한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일 인상이다.







Plan_Floor
여행지를 닮은 공간, 본채
부부가 생활하는 본채 공간은 남향의 작은 정원에서 드는 오전의 빛과 북향의 정원에서 드는 오후의 노을빛을 시시각각 골고루 담는 공간이다. 원래는 마당과 연결되는 창은 아니었다. 어느 부분은 출입구로 막혀 있기도, 창을 통해 정원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 부부의 여행은 주로 현지에 동화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현지에서 운동을 배우고,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수업을 듣기도, 동네 아무 카페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기도 하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여행을 한다. 우리는 정원과 내부공간이 좀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이어지도록 하여 부부의 삶이 이와 다르지 않되, 좀 더 적극적으로 빛과 외부를 받아들이기를 바랬다. 여러 개의 공간으로 분리하던 벽을 모두 털고, 가족들이 자연스레 향유하는 거실과 주방 공간이 정원과 한데 어우러지길 바랬다. 이 공간에서는 그저 유유히 각자의 시간을 즐기기도, 모이기도 하는 일상이길 상상했다.
빛이 가장 잘 들지만, 마당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곳에 외부의 빛을 충분히 들이는 욕실을 배치했다. 창 너머로 대나무 식재를 통해 빛과 시선이 걸러진다. 샤워공간은 별도로 구분하고, 넓게 열린 창 앞에 욕조 하나만을 배치하여 공간의 여유와 사치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적갈색의 타일은 빛과 어우러져 이국적임을 더하면서도 식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혼자만을 위한 공간, 별채
뒷 마당에 자리한 별채 공간은 부부의 딸이 독립적으로 머무르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주차장의 메인 출입구를 지나 본채와 주차공간 사이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별채에 다다른다. 단 한 명이 사용할 이 곳에는 침실, 옷장, 책상과 욕실을 배치하되 그 이외의 생활공간(주방)은 본채에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긴 거주자를 위해 마당이 보이는 가로로 긴 창을 두고, 그 앞으로 긴 책상을 두어 컴퓨터를 하기도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는 공간을 구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