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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한옥마을 지구에 위치한 한 대지는 오랜 시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자연에 속한 공간이었다. 지자체가 주도한 개발의 광풍 속에서 한옥 지구로 귀속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북측 인접 대지에 한옥 건물이 지어진 이후 오랜 시간 민간에 의해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자, 한옥의 제한 규정이 사라지고 개별 필지 평탄화를 위한 인공 계단식 석축으로 단절된 대지만 남았다. 이러한 인공적 난도질은 대지의 본래 자연스러운 구릉의 모습을 지웠고, 이후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대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토목 공사로 드러난 황토빛 토양은 마치 개발에 의한 상처만을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 뒤로 서측 저수지 골안못의 수면엔 10월의 고운산 가을 풍경이 은은히 비추었다. 마치 주변의 숲, 바위 그리고 물과 같은 자연이 대지를 치유하려는 듯했다.
울주군 상북면은 영남 알프스의 7개 산 중 하나인 고헌산(고운산의 주산)에 자리하고 있다. 고운산은 험준한 봉우리와 다양한 식생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곳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도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로, 산을 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자연의 시간과 흔적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준다. 도시적 맥락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찾아가는 것이 이 대지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하고 타당한 접근법으로 판단된 이유다. 대지는 단순히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 장소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교감할 수 있는 터전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경험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이 대지에 적합한 카페라는 형식에 대한 접근 또한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일상에서 벗어난 근교 카페의 형식을 한 단계 넘어서는 공간과 프로그램적 제안은 고운산과 자연, 그리고 그에 속한 요소들을 체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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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숲의 회복, 그 사이의 건축
첫 번째 회복으로, 인공 계단식 석축으로 단절된 대지를 본래의 지형으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서측 골안못과 같은 높이로 대지의 서측을 낮추고, 동측 도로와는 경사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복원했다. 이는 단순히 지형을 복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 숲이 존재했던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작업이었다. 대지에는 고운산의 주요 수종과 암석, 물의 흐름을 흩어 놓아 자연의 기억을 다시 돌려놓고자 했다. 건축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스며들 듯 자리 잡았다. 사람이 숲을 걸을 때 나무와 자연물 사이를 유영하듯, 이 사이를 건축의 공간으로 자연과 구분 없이 섞어내는 시도를 반복하며 필요한 건축 공간을 채워갔다. 동측에는 도로와 면한 카페의 진입 공간을, 서측에는 골안못을 바라보는 식음 공간을 배치하고,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동선은 자연스러운 숲길처럼 설계되었다. 약 80여 미터 길이의 ‘숲길 건축’은 그 속을 거니는 사람의 흔적처럼 유선형 형상으로 고운산의 식생들과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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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교감 속 미지의 나를 발견하는 순간
'자연 속의 경험'은 카페 프로그램의 주요한 구심점으로 작동한다. 세 개의 중정 공간과 외부 풍경이 연속된 공간에서 방문자의 내·외부 시각적 인식을 혼재시킨다. 10여 분의 느린 걸음으로 이루어지는 내부 여정은 구분된 공간 경계 없이 지속되어 ‘늘어진 인식의 시간’ 속에서 ‘나와 자연의 교감’이 정제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카페는 제한된 사용자만 출입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 고요하고 집중된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공간 안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을 발견할 기회를 얻는다. 카페의 브랜딩 역시 '미지의 나와의 조우'를 핵심으로 설정했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제공되는 식음료 역시 고운산과 주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다. 나무, 돌, 물과 같은 자연 요소를 테마로 한 메뉴는 단순히 미각적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공간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청각적 경험과 함께 작동하여 복합적인 감각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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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건축
자연과 교감하기 위한 건축의 접근은 최소의 인공적 개입으로 이루어졌다. 건축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유리는 곡률이 다양한 복층 유리를 사용하여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유리 멀리언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며 외부 풍경이 내부로 스며들게 한다. 스팬드럴 구간은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마감해 자연의 색채가 은은히 반사된다.
강렬한 햇빛을 고려해 건축물 전체에는 3단으로 구성된 스테인리스 처마가 설치되었다. 일사량을 조절할 뿐 아니라, 건물의 곡선을 따라 흐르며 유선형 조형을 강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정확한 곡률 구현을 위해 금속 공장에서 제작하여 지붕 슬라브 타설 시 거푸집 역할을 하도록 미리 조립, 슬라브와 일체화되며 합판 거푸집 공정을 없애 곡률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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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그 새로운 가능성
'미지의'라는 단어는 우리의 작업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태초 자연의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자연 속 어렴풋한 사이 공간을 찾아가는 시도이기도 하며, 방문객들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과정 자체가, 인공의 영역을 명확히 만들어 왔던 기존 건축적 접근에 대한 '미지의 한 걸음'임을 깨닫게 한다. ‘미지의’가 시간이 지나며 자연과 함께 더 깊이 조화를 이루길, 그리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그 속에서 자연과 자신을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이 지속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