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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호랑이 사원, 趣虎家
‘지구 상의 무한한 지점 가운데 특정한 장소는 단 한 곳뿐이다. 따라서 장소는 건축을 특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작업 방식 대부분은 앞서 인용된 글로 시작한다. 취호가가 건축되기 이전의 대지, '특정한 장소'에 대한 나의 심상은 아득한 고요였다. 예기치 않게 심신을 전복할 무언가가 비축되는 정숙과 무인(無因)의 고요함이 깔렸다. 대지에 대한 나의 짙은 인상은 땅 깊숙이 새겨진, 깊게 베어버려 아무리 씻어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마는 ‘장소의 생기(生氣)’에 대한 인간의 감응이었으리라.




Plan
이 대지는 '먼 옛날 마을 앞 큰 바위 위에 호랑이가 자주 올라 울었다.'하여 ‘범우리’라 이름 지어진 마을로, 현재는 ‘호명리’라 불리는 병두산과 두타산 그리고 오대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 산들의 주름 사이를 넘나들던 호랑이의 흔적이 시간의 범위를 아스라이 흩트린 터에 ‘머무름을 통해 복원의 에너지를 얻는 호랑이 사원’ 이야기를 기록했다.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였다. 두 그림에서 각각 나오는 송림(松林)과 죽림(竹林)은 명상의 장소이자 깨달음을 얻는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 건축주와 나 사이에 이 공간을 구축하는 암묵적인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 ‘명상의 장소이자 깨달음을 얻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기에서 호랑이는 자아 속으로 성찰에 나서는 존재, 근원의 실체가 된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죽하맹호도에서 이러한 개념이 모든 인위적인 방해물을 지워내고, 몰입하는 행위인 무위(無爲), 화면의 경계를 초월하여 영원한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무한 공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이 대지의 건축은 머무는 자에게 혼란해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화하고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는 복원의 에너지를 얻는 무위의 장소가 되길 바랐다.





이러한 개념으로 존재하는 공간은 자연 생기生氣의 순환을 통한 심상의 순환을 이루기 위해 여백과 졸박미를 추구했다. 경사진 땅은 수평의 축을 만들어 장소 너머 산들의 주름과 공간의 경계가 교차하며 장면을 만들고, 경계를 부정하며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투영의 못을 건너는 긴 축은 커다란 바위틈으로 동선을 이끈다. 커다란 바위틈 무위의 존재가 나무숲 사이, 바위에 올라있는 장면을 만든 것은 정제된 소재(죽은 나무와 바위) 위에 시간의 범위를 밤의 밖으로, 그리고 낮의 밖으로, 시간에서 솟아올라 무연(憮然)한 합작을 구현하고자 함이었다. 이 대지 위에 건축된 모든 공간은 이 장면들의 반복과 교차를 통해 시작하고 끝맺는다.




우리가 시간의 범위를 초월한 장소로부터 얻어진 감응을 호랑이 사원의 이야기로 기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장소에 머무는 이들에게도 그 감응이 전해져 그들의 삶 속에서 무위(無爲)의 활력(活力)이 이어지길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