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사진
시공사
과거 어머니를 위한 작은집 인허가를 의뢰했던 건축주가, 늦은 여름 본인과 가족의 집을 위해 2년 만에 다시 연락을 주었다. 처음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대지를 찾았지만 결국 전원주택보다는 아이들과 살기 좋은 남양주 다산신도시 개발지구 내 도심형 단독주택을 짓기로 결정했다. 대지는 절곡이 있는 형태였고 남쪽 전면에는 커다란 산과 나무, 바위가 있었다. 역경사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상에 드러난 바위는 굴착 시에 암반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했다. 전면에 보이는 나무들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건축주는 이런 이유로 땅을 제대로 구매한 것인지 걱정했다.
하지만 단순히 평면적 상황으로만 땅을 판단할 수 없다. 모든 대지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어떻게 심사숙고하고 건축주가 원하는 장점으로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대지는 역경사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산 능선 끝자락으로 지면이 산의 레벨과 비슷해지는 절묘한 지점에 있었다. 어느 정도 경사와 방향이 산과 일치 했고, 건물 높이만 확보된다면 겨울에는 한강 조망도 가능했다. 전면 산이 오히려 커다란 마당이 되어줄 수 있었으며, 레벨 차이를 잘 이용하면 지하 층을 지상 층처럼 만들 수도 있었다. 북측에 도로가 있어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고, 삼거리 입지 덕에 지하 주차장 앞에 충분한 진입 공간이 확보되었다. 다행히 지하 암반은 아주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튼튼한 기초가 되어주었다.
대지 전면에 산은 아이들에게 넓디넓은 자연 그대로의 숲 마당을 선물해 줄 것이며, 황사와 서양 빛을 막아줄 것이다. 대지 전면 병풍처럼 우뚝 선 도토리나무는 가족에게 사계절의 흐름과 소중함을 알려준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에는 딱딱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려줄 것이며, 겨울에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호랑바위는 아이들에게 한결같은 우직함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범용적인 큰 공간보다는 공간 각각에 다른 기능을 담기를 원했다. 공간마다 다양한 기능을 담아내기 위해 효율적이면서도 섬세한 고민이 필요했다. 건물 전체 볼륨에 비해 개별 공간이 커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지하 AV룸은 남편을 위한 공간으로, 전면에 숲과 호랑바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고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촉촉한 공간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위한 공간은 가족 간 소통이 가능하면서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개성을 담을 수 있는 독립적인 구조로 제시했다. 최상층부 테라스와 다락을 포함한 복층 홈 오피스는 그림을 그리는 부인을 위한 공간이다. 맞은편의 다락은 어린 아들을 위한 창조적인 놀이터이다. 두 공간은 시선을 공유하지만, 선택적으로 독립 공간이 된다. 가족의 개성과 커뮤니티, 일상과 추억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건축 형태를 먼저 설정하지 않는다. 특히 대지가 협소하고 공간의 중요도가 높은 단독주택은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변 환경에 더해,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건축주 내외와 가족의 바람이 투영된 조형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하도록 정해졌다.
큰 방향성 외에 세부적인 공간과 모습을 건축주도 설계자도 성급하게 설정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불안이 있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서로에게 귀를 기울였다. 단계마다 빠르게 결정하면 마음의 부담과 시간은 덜겠지만, 기존에 하던 방식일 가능성이 높다. '하던 대로' 하는 방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도 현재 상황에 적합한 단 하나의 대안일 뿐이다. 결국 기존의 익숙한 것이 아닌, 가족이 원하는 것, 대지가 말하고 있는 것을 충실히 반영하고 발전시켰다. 처음엔 ‘하늘 향한 집’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엔 가족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민휘서원’이라는 이름이 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