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주는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철거하고 같은 곳에 새로운 집을 짓기로 하였다. 가족들이 오랜 기간 살았던 곳이라 대지의 장단점을 뚜렷하게 알고 있었고, 다양한 집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어 본인들에게 꼭 맞는 집이 어떤 집인지에 대한 이해와 기대가 높았다. 유사한 형태의 건물들이 반복적으로 지어진 주택단지 안에서도 해당 대지가 주변 대지와 다른 이유는 모서리에 있기 때문이다. 4면 중 3면이 경사로에 접해 있으며, 서쪽과 동쪽의 대지의 고저 차가 4.9m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일부를 근린생활시설로 사용 가능한 점포주택 대지였다. 전체적인 규모는 건축주와 협의 단계에서 주변 건물보다 크게 계획되었다. 2층 규모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가족 구성원들의 요구로 3층이 되었다. 모서리에 있다 보니 사생활 보호를 위한 담장 계획이 건물의 볼륨을 커 보이게 할 것으로 예상했고, 여기에 지구단위계획의 경사지붕 의무까지 더해졌다. 충분한 규모를 확보하면서 주변 건물보다 커 보이지는 않길 바라는 기대가 이 프로젝트의 주요한 과제였다.
Axonometric
익숙한 요소로 채워진 집
해당 대지를 포함한 주택단지 내 건물들은 대부분 벽돌로 지어져 있었으며 하나의 볼륨보다 분절된 볼륨과 지붕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의 특징 요소들을 활용하여 주변 맥락과 어우러진다면 커진 볼륨에 대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큰 볼륨을 작은 볼륨과 나누고, 3층을 2층에서 살짝 떼어내 3개로 나누어진 지붕 방향을 다시 서로 다르게 하였다. 보편적인 단일 재료에 따른 큰 덩어리 감은 콘크리트 슬래브 띠로 층을 나누어 구분했고, 벽돌을 쌓는 방식도 3가지로 다채롭게 구성하였다.
결국 모티브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익숙한 빨간 벽돌집이다. 익숙하게 보이는 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거나 섞어 아주 새롭지도, 너무 진부하지도 않게 하였다. 이 집은 국내외 곳곳에서 찾은 익숙하지만, 매력적이고 의미있는 요소들이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섞여있다. 대표적으로 한식 문이 닿아있는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은 4짝의 문을 받아 내기 위해 적정한 크기가 필요하였다. 건축이 볼륨감을 상쇄시키듯, 기둥도 수직적으로 4개의 덩어리로, 수평적으로 철제 띠로 구분하였다. 이때 사용된 중심부 철제기둥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기둥에서, 목재와 접합 방식은 스카르파의 기둥에서, 철제 띠는 한국의 문화재에서 보았던 기둥 요소들이다.
Section
상반된 요소로 채워진 집
디자인만큼 이 집에서 중요한 부분은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시각적 개방감을 주는 것이었다.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건축주 가족은 어디서든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적인 공간은 확실하게 구분되기를 원했다. 가족 공용공간인 1층은 가변적으로 구획할 수 있도록 벽 대신 창으로 구획하였다. 모든 창이 열렸을 때에는 외부 정원까지 시원하게 개방할 수 있다.
Plan_B1
Plan_1F
사적공간인 2층부터 구성이 사뭇 다르다. 내부는 노출을 줄이기 위해 창을 최소화 하였고, 대부분은 테라스 난간 높이에 가려져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방에 개별 테라스가 있어 어디서든 나갈 수 있고, 충분한 외부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복도 공간 또한 외부 노출되는 창 없이 환기와 채광을 할 수 있도록 중정을 계획하였다. 일련의 방식은 커튼과 창을 모두 개방했을 때도 사생활을 보호해 준다.
Plan_2F
내부 공간은 개방된 곳과 층간 단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현관 보이드 공간은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고 그 시선은 2층과 3층 중정으로 이어진다. 마스터 베드룸에 욕실 간 벽 상부를 비워서 연결함으로써 개방감을 만들고, 문을 모두 열면 경계는 사라진다. 집은 비워진 요소들을 통해 수직, 수평적으로 연결된다.
Plan_3F
익숙한 요소들이 주변 맥락과 잘 어우러져 편안함을 준다면, 상반된 요소들은 다양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 적호재는 익숙한 요소를 모아 새로움을 만들고, 상반된 요소를 통해 완성되었다. 주변과 비교해 독보적인 크기가 되지 않았으면 하였고, 사생활 보호와 시각적 개방감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했다. 익숙한 재료와 방식을 차용하지만 그것의 재해석은 새롭고,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도 마을에 신선함을 주었으면 한다. 나아가 익숙함과 상반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개인과 공공이 모두 만족하고 어우러지길 바라는 작업의 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