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속 좁고 긴 땅에 지은 정원 같은 집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남편)와 전직 쥬얼리 디자이너(아내) 그리고 3살 딸이 함께 사는 세 가족의 집이다. 아파트에서 편리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다, 어느 날 문득 상자 같은 집에 회의감을 느낀 건축주 부부는 서울 하늘 아래 온전한 땅을 가지고 싶은 꿈을 가졌다.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과 남편의 그림 그릴 작업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1년 가까이 땅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계속 살아온 동네에서 느껴지는 안전한 분위기, 잘 갖춰진 인프라, 아이 키우기에 좋은 깨끗한 동네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했다. 무엇보다도 좁고 긴 땅을 발견한 남편은 평범한 판상형 아파트보다 재미난 주택을 기대하며 이 땅을 선택했다.
Site Plan
건축주는 명확한 취향과 기호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건축주 스스로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설계 과정에서 길을 헤맬 때가 많다. 건축주 스스로 집에 대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아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심 속, 좁고 긴 대지에 자리한 3층 협소 주택(5X12m)은 아파트에서 누리지 못하는 정원을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할까. 부지가 협소해 단독주택의 로망인 정원을 확보하기 어려웠기에 각 층 마다 ‘볕이 잘 드는’ 공간을 담기로 했다. 따뜻한 온기, 스르륵 눈이 감기는, 기대어도 좋을, 그늘이 반가운 공간.
1층 서쪽 현관, 2층 동쪽 평상마루, 3층 남측 계단실에 사용된 유리블록은 바짝 붙어있는 오래된 집들 사이에서 프라이버시를 만든다. 그와 동시에 빛을 끌어들여 낮에는 인공조명이 없이도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밤에는 내부의 빛이 밖으로 새어나간다. 3층 긴 복도에는 천창을 두었다. 낮에는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이 시시각각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밤에는 밝은 달빛과 마주해 가족 모두 만족하는 공간이 됐다.
Plan_1F, 2F
아파트처럼 펼쳐진 넓은 공간이 아니기에 계단은 간결하게 압축적으로 올리고,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 답답하지 않도록 공간이 가진 기능을 한 가지로 국한하지 않으며, 복층의 공간을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으로 구분하여 자연스럽게 간격을 만들었다. 폭은 좁지만, 자연스럽게 깊이감을 최대한 확보했다.
1층은 주차장을 거쳐 남편의 작업실을 배치했고, 계단 하부에 외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창고를 겸한 보일러실을 두었다. 1층 현관은 북측 도로와 바로 맞닿아 있어서 현관 들어와서 좌측에는 신발장, 우측에는 유리블록을 두어 입구가 답답하지 않고 밝은 느낌을 준다. 계단을 올라오면 중문이 2층 주거공간과 분리되도록 하고, 중문을 열었을 때 전면으로 펼쳐진 배치가 아닌 좌우로 주방과 거실이 나뉘는 극적 요소를 느끼도록 했다.
2층은 방이 없는 구조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력벽을 활용해 주방 및 수납을 계획했다. 일자형 주방을 뒤로 4~6인용 확장형 테이블을 두고, 그 옆으로 팬트리를 두어 수납을 확보했다. 2층도 계단 하부를 화장실로 활용했다. 건축주는 답답하고 좁은 느낌이 아닌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원했기에 2층 거실은 우드&화이트 톤으로 구성했다. 거실을 지나 동쪽에 평상마루를 두었는데, 딸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놀이 공간이 되었다. 평상 뒤로 넉넉하게 여유를 두어 식물을 두거나 큰 물건을 수납할 수 있도록 했고, 유리블록을 통해 햇빛은 들어오되 딸이 시선에 방해받지 않고 편히 놀 수 있도록 계획했다. 평상을 마주해서는 모듈로 된 월-시스템 선반(wall-system shelf)을 두었다. 아내의 취향 공간이기도 하다. 책, 오브제, 딸의 장난감, 남편의 그림, 식물 등을 이용해 때마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딸의 장난감의 크기와 컬러가 다채롭고, 공간이 늘 정돈되기 쉽지 않다 보니 오히려 실내에 가구가 적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남쪽에 면한 유리블록으로 언제나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3층에도 작은 거실을 만들었다. 화장실과 파우더룸, 아내의 화장대를 분리하였고, 작은 거실을 지나 쭉 뻗은 복도를 두고 드레스룸, 침실, 자녀방으로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해 크기보다는 기능에 맞추었다. 도심지 협소 주택에서도 나만의 하늘을 누릴 수 있게 긴 복도에 천창을 두었다. 낮에는 인공조명을 켜지 않아도 내내 밝고 쾌적하다.
Plan_3F, RF
마당을 대신하여 옥상에서 야외활동을 누릴 수 있도록 데크를 두고, 난간 역시 외장재와 같은 벽돌을 사용하여 딸이 물놀이하거나,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등 개인 생활이 침해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계획했다.
우리에게 거저 다가오는 자연을 잘 받아들이는 동시에 내어주어 건축주 가족이 집에서 안온감(安穩感)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공중에 있는 정원이 공‘중정’원이 되어 동네의 얼굴이 되길 기대해본다. 다양한 표정을 가진 협소주택에서 공간이 가진 비밀을 건축주 가족이 살면서 발견하고 누리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