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의 보물같은 한옥 찾기_삶을 담아내는 변주곡.경북 한옥의 다양한 형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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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후즈 작성일16-03-31 00:44 조회153,109회 댓글0건본문
경북 한옥의 다양한 형태 (1)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글입니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및 별당
예천권씨 초간종택 및 별당 전경 ⓒ 박정연
초간종택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며, 특별히 별당은 보물로
먼저 지정되었다. 이 가옥은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된 것으로 조선 중기 문신인
초간 권문해(1534-1591)선생의 할아버지 권오상 선생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필자가
이 가옥을 소개하는 이유는 가옥과 관련된 문화재 지정 표지석만 5개인데다, 주위를
둘러보면 반달모양의 뒷산과 좌청룡 백마산, 우백호 아미산을 가진 대단한 명당임이
명확히 느껴지며, 가옥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만 보아도 대단한 가옥 일듯 한 생각이
들기 때문만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만회고택이 ㅁ자형 구성에서 사랑채가 일부 확장되었다고
한다면, 이 가옥은 별당(사랑채)이 ㅁ자형 구성에서 완전히 분리된 후 필요에 의해
일부가 연결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 박정연
형식으로 보아 별당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사랑채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가옥 본채에
사랑방을 지니고 있으며, 이곳은 생활공간이라기보다는 가옥의 상징적인 공간이자
강학공간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별당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한옥은 완만한
경사지에 건립되는 경우 가옥의 전면이 낮고 안방 부분이 높아서 ㅁ자형 가옥의 좌우익랑에서
그만큼의 경사를 극복해주어야 한다. 때문에 하부는 부엌과 아궁이가 있어 밥을짓고
구들에 불을 지필 수 있도록 하고, 상부는 안방에서 이어지는 수납공간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종종 살펴볼 수 있다. 초간종택이 자리잡은 대지도 완만한 경사를 가지고 있기에 안방을
기준으로 하면 가옥 전면은 2층높이에 해당하게 된다. 이 높이는 별당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복층의 구성이 형성되게 하였다. 다른 한옥에서 보여지는 복층구성이 합리적인 수준의
소극적인 형태라 한다면, 이 가옥의 복층구성은 대단히 적극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별당 후면에서 안채의 측면으로 이어지는 동선또한 재미있다. 협문이 만들어져서
외부공간끼리 서로 이어주고 있는 한편, 협문과 본채 사이에 판문이 만들어져서 별당에서
계단을 오른 후 파만자난간(卍자가 깨어진 형태의 난간)을 가진 툇마루로 연결된 동선이
이어진다. 이러한 구성은 별당이나 사랑방에서 기거하던 바깥주인이 안주인이 기거하는 방에
조용히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며, 안사랑채에서 별당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되기도 한다.
유사한 경우를 사랑채가 ㅁ자형 본채와 별도로 자리 잡은 가옥에서 가끔 살펴볼 수 있는데,
초간종택처럼 신을 신었을 때와 벗었을 때 모두 접근 가능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경주 양동 향단
전경/ 툇마루/향단 앞마당에서 행랑채 방향을 바라봄 ⓒ 박정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경주의 양동마을은 물(勿)자 지형의 명당에
150여채의 가옥들이 자리잡았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경쟁하듯 서로의 가문을 견제하며
하나씩 건물을 지었다고 하며, 찬성공 이번이 손소의 사위가 되면서 이 마을에 자리잡았고
우재 손중돈과 회재 이언적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기도 한 곳이다. 향단을 설명하기에 앞서
향단과 대응할만한 손씨 가문의 가옥은 관가정인데, 1491년 손중돈이 건립하였고 작은
안마당을 가진 ㅁ자형의 가옥에 전면의 사랑채 부분이 연장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 박정연
회재 이언적은 예조판서를 지내다가 노모 봉양을 이유로 사직하고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다.
이때 중종이 노모를 모실 향단을 건립하도록 하사했으며 건립당시에는 99칸 규모였으며,
현재는 51칸이 남아있다. 행랑채와 본채의 처마 끝선이 일치할 정도로 가까이 배치되었지만
경사지에 건축되었기 때문에 답답한 공간이 아닌 행랑채 지붕 위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구성을 가진다. 가옥에서 쉽게 살펴보기 어려운 높이의 기단이 있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
향단은 과거에 절집이 있던 위치에 세워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 박정연
향단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일(日)자 형태로 평면이 만들어져서 두 개의
안마당을 갖는다는 점이다. (공간구성으로 보자면 월(月)자에 비슷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비슷한 배치를 화성시 서신면 정용채가옥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곳은 향단에 비하면
안마당의 규모가 큰 편이며 지형을 고려하여 확장된 형태로 보이며, 향단은 노모가 가옥을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적고 마을에서 안방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공간을 구성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ㅁ자형 구성에서 발전하여 두 번 이상 반복되며
건물이 더해지는 모습을 여러 가옥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특별한 사용자를 위해
공간을 구성하거나, 사용하는 과정에서 공간이 추가로 필요하여 덧붙여지는 등의 경우는
ㅁ자형 구성에서 보다 독특한 형태로 건물이 추가되기도 한다.
안동 임청각
안동 임청각의 마당들ⓒ 박정연
임청각은 답사할때마다 너무 멋스럽다고 느끼지만 그만큼 안타까운 느낌을 갖게하는 가옥이다.
이렇게 멋진 가옥 전면에 철길이 지나고, 화물열차들이 지나기 때문에 붉은 철가루가 쌓여
기와지붕이 붉게 보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상해 임시정부를 이끌며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이 태어난 곳이며, 외손이며 조선 말 좌의정을 지낸
문헌공 류후로(1798-1876)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이 가옥 군자정의 우물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3명의 위인이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그 기운을 막기 위해
일제가 가옥 전면에 철도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99칸에 달하던 가옥의 절반가량이
훼손되었으며, 임하댐 건설로 인해 유유히 흐르던 낙동강 물줄기도 아름다움을 잃었다.
나라를 구하려 노력한 이의 가옥 앞으로 조선의 물자를 일본으로 빼돌리는 열차가 지나게 했다니,
후손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해야 할 사실이다.
ⓒ 박정연
ⓒ 박정연
이 가옥을 다섯 번째로 소개하는 이유는 일(日)자와 월(月)자가 합쳐셔 용(用)자형
가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해와 달을 지상으로 불러들여 천지의 정기를 하나로
화합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이 과정에서 3개의 안마당과 여러 외부공간이 형성되게 되며
남녀별, 계층별로 구분되어 공간을 사용하게 된다. 경사지형 위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구분이 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앞서 소개한 향단에서는 유사한
크기의 안마당이 두 개 형성된 데 비해, 임청각에서는 남북으로 긴 마당, 정방형의 마당,
동서로 긴 마당이 형성되고 있다. 동서로 긴 마당은 향단의 경우와 유사하게 본채와
행랑채간의 마당이기 때문에 기단에 의한 단차가 있어서 비교적 밝고 넓게 느껴지며,
남북으로 긴 마당은 비교적 폐쇄성이 강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안동 의성김씨종택
안동 의성김씨 전경/마당 ⓒ 박정연
이 가옥은 권력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 고발하는 기백 때문에 세 번이나
체포영장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한데, 이러한 정직함의 댓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알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기운이 가옥을 진입하면서부터 느껴지는 듯 하다.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바다 옆보다는 강 옆에 사는 것이 낫고, 강 옆보다는 냇가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서술되어 있다. 의성김씨 종택은 반변천이라는 내가 흐르는 내앞마을에
자리잡고 있기에 좋은 입지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인근에 귀봉종택, 추파고택, 제산종택 등
여러 문화재 한옥들이 자리잡고 있다.
ⓒ 박정연
의성김씨 종택에서는 청계 김진(1500~1580)을 중시조로 모시는데, 청계 선생의 다섯아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와자등과택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다섯 아들 모두 학행이 뛰어난
선비로서 각각 일가를 이루었는데, 약봉 김극일, 귀봉 김수일, 운암 김명일, 학봉 김성일,
남악 김복일이 다섯 아들이며 첫째 아들은 종택에서 살았고, 귀봉종택, 운암종택, 학봉종택,
남악종택 모두 현존하며 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가옥이기에 이 다섯형제를 배출한
청계 선생의 자부심과 권위를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옥들 중 의성김씨종택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가장 복잡한 구성과 큰 규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ㅁ자형을 기본으로 하는 구성이 또다른 ㅁ자형 건물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대문이 별도로 없는 담장을 지나면 사랑채와 강당이 연장되어진 외곽의
ㅁ자형 건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행랑채에 만들어진 문을 통해 안마당으로 진입하면
내부에 또다른 ㅁ자형 건물이 갖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내부의 안채 대청에도 특별한점이 있다. 보통의 경우는 기둥을 전면에 하나, 벽이 만들어지는
후면에 하나를 갖추는데, 이곳에서는 2개씩 쌍을 이루어 기둥이 세워져 있다.
과거에 작은 공간이었다가 처마가 덧붙여져서 기둥이 새로 생겼을 경우일 수도 있고,
초기부터 구조적으로 안정되도록 구성했던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대청 바닥에서 높이차를
두어 만든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의 대청 내에서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나누어 앉고 위계를 형성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이제까지 경상북도 한옥의 기본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는 ㅁ자형을 토대로 여러 한옥들이
다양하게 변해가는 것을 살펴보았다. 건물을 똑같이 만들더라도 누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공간이 되기 때문에, 한옥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해보이기에 모두가 그저 비슷한 한옥이라고 생각한다면 몇몇 한옥을 답사하고 흥미를 잃어버리기
쉽지만, 각각의 한옥이 어떠한 삶을 담아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바뀌고 덧붙여졌는지를 찾아내보려
한다면 한옥을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옥이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변화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
계속......
■ 문화재 정보
종목 : 중요민속문화재 제172호
명칭 : 청운동성천댁 (靑雲洞星川宅)
소재지 : 경북 청송군 청송읍 서당길 12 (청운리)
종목 : 보물 제1568호
명칭 : 상주 양진당 (尙州 養眞堂)
소재지 : 경북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승곡리)
종목 : 중요민속문화재 제169호
명칭 : 해저만회고택 (海底晩悔古宅)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봉화읍 바래미1길 51 (해저리)
종목 : 중요민속문화재 제201호
명칭 : 예천권씨 초간종택 (醴泉權氏 草澗宗宅)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3번지
종목 : 보물 제412호
명칭 : 경주 양동 향단 (慶州 良洞 香壇)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1-75 (양동리)
종목 : 보물 제182호
명칭 : 안동 임청각 (安東 臨淸閣)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임청각길 53 (법흥동)
종목 : 보물 제450호
명칭 : 안동 의성김씨 종택 (安東 義城金氏 宗宅)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임하면 경동로 1949-9 (천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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