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 제따와나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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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 studio_GAON
Architect : HyoungNam Lim, EunJoo Roh
Location : Bagam-ri, Nam-myeon, Chuncheon-si, Gangwon-do, Korea
Site Area : 9,650㎡
Building Area : 1474.53㎡
Total Area : 1,718.46㎡
Structure : RC
Finish Material : Brick Classic
Project Year : 2018
Photographer : YoungChae Park
고통 끝에 어떤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시작도 즐겁고 중간도 즐겁고 끝도 즐거운” 그런 것이 불교의 핵심인 중도(中道)사상이라고 한다. 장좌불와로 몇 십 년을 수행하여 해탈하는 것이 바른 구도자의 모습일 거라고, 아주 평면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 이야기는 무척 신선했다. 그 이야기를 해준 분은 우리의 건축주인데,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개념으로 집을 짓자고 했다. 그 집은 열반에 이른 부처님의 집이며 열반에 이르고자하는 사람의 집이다.
2년 전 어느 날 사무실로 호리호리한 체구에 지적인 인상을 가진 스님이 찾아왔다. 마주앉아 아주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말투로 ‘제따와나 선원’이라는 이름의 사찰 불사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는 선원의 본 건물은 건너편 산 위에 이미 설계가 시작되었고, 따로 지을 신도들이 묵을 ‘꾸띠(‘오두막’이라는 뜻의 개인 숙소)라는 시설의 설계를 맡길 회사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5월의 어느 오후, 조금 아는 불교에 관한 어설픈 이야기를 보태며 아주 선선하게 부는 초가을의 바람처럼 오가던 선선한 대화는 “그럼 설계를 맡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끝났고, 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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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나는 모든 종교의 기본 정신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때의 입장과 그 종교가 정착되던 시절의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형식이 달라졌을 뿐이라는 무척 무식하고 용감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건축을 공부하다보니 절이나 반가니 민가니 하는 오래된 살림집들과 친해지고 예전의 집짓는 방식과 친해져서 약간은 고리타분한 건축관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절이라 하면 일주문, 천왕문에서 시작해서 보살단, 신중단을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였고, 스님과 처음 만나 일의 실마리를 푸는 자리에서도 그런 이야기로 시작했다.
“종교란 지향점은 각자 다르겠지만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가장 건축적인 의상대사 <법성게(法性偈)>의 도상을 도면으로 그리고 입체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의 종교건축, 특히 불교건축은 그런 길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탁월한 공간감을 드러내고 있다. 직선을 뻗어나가기보다는 조금 휘고 많이 꺾어지고 혹은 빙 돌기도 하며, 지세와 종교적인 교의가 건축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아주 현명한 해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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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을 지을 위치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춘천이지만, 실은 예전에 대학생 때 엠티를 가거나 친구들과 경춘선을 타고 지나다니던 아주 친숙한 이름의 강촌이라는 동네였다. 대지는 한가한 마을을 관통하는 2차선이라기에는 조금 좁고 1차선보다는 조금 넓은 아스팔트 포장 길에 면한 논이었다. 땅을 보며 선방에서 며칠씩 수행하는 신도들이 묵을 꾸띠를 구상했다. 처음에는 네모가 겹치며 그 안에 사람들이 거닐며 명상을 하는 길을 만드는 계획이었다.
설계가 진행되며 선원장 스님께 불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스님이 제시하는 설계의 가이드라인 중,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소멸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다. 집착을 통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 공간이므로 사성제가 기본적인 개념이 되어야한다 것이었다. 또한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중도(中道)’라는 개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다”. 얼마나 통쾌한 이야기인가. 우리는 이상한 강박 속에서 살고 있다. 즐겁게 산다는 것은 마치 인생을 낭비하는 자세라는, 그런 강박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시들어가는 것이다. 그럴 때 “즐겁게 살아도 돼.”라고 누군가 이야기해준다면 그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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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이 원래 그것이며, 다만 많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가지 역사적, 지역적인 요소들이 통합되며 불교의 처음 정신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설계를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는 사이, 건너편 산위에 짓기로 한 법당과 선방 등 주요 시설들이 우리가 설계하는 대지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옆에 바로 붙은 땅이 추가로 합류하였다.
제따와나(Jetavana)는 ‘제따 왕자의 숲’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이다. 한자로는 ‘기수급고독원’이고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부른다. 급고독장자라는 사람이 부처님을 위해 사원을 지으려고 동분서주하다가 맘에 드는 땅을 찾게 된다. 그 땅의 주인이 제따왕자였는데, 그는 팔기 아까워서 완곡한 거절의 표현으로 “여기에 금화를 깔면, 깔린 만큼의 땅을 주겠노라” 이야기한다. 급고독장자는 정말로 땅에 금화를 깔기 시작하고, 놀란 제따왕자는 그를 말린다. 그렇게 세워진 곳이 기원정사이며, 석가모니 생전에 가장 오랜 기간 머문 장소여서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설계의 방향을 잡을 때, 과거의 방식과 불교적인 교리를 바탕에 깔되 현대적인 생활 습관에 적합하게 계획을 하고자 했다. 또한 선원장 스님은 불교의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 석가모니가 기원정사에 앉아서 주석을 하고 사람들에게 설파하던 불교의 기본 정신을 되살리는 것, 그런 정신이 제따와나 선원을 설계함에 가장 큰 바탕이었다.
그것은 무척 오래된 것이면서 무척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그런 점에서 기원정사의 유적을 상징하는 벽돌은 아주 적합한 재료였다. 기존의 대부분의 사찰처럼 한옥으로 짓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뼈대를 만들고 벽돌로 옷을 입혔다. 대신 기존 가람(伽藍] 배치의 방식을 고려해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향하는 길은 직선으로 곧장 가지 않고 가면서 세 번 꺾어 들어가게 했고, 대지의 원래의 높낮이를 이용해 세 개의 단을 조성하여 순서대로 종무소와 꾸띠, 요사채, 법당 등 위계에 맞게 건물을 올려놓았다.
1년 동안의 설계기간을 거쳐 공사를 시작했고, 뼈대를 올리고 벽돌을 외부에 쌓고 바닥에 벽돌을 깔아서 무려 30만장의 벽돌로 공간을 완성했다. 공사 역시 1년이 걸렸다.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몇 가지 어려운 문제를 넘어가며 땅을 다듬고 집을 올리고 나무를 심었다.
그리하여 처음도 과정도 결과도 즐거운 중도의 정신이 집의 안과 밖에 스며든 공간이 완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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