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ta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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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studio asylum
Architect: Hun Kim
Location: Jongno-gu, Seoul
Site Area: 488.50㎡
Building Area: 285.78㎡
Total Floor Area: 913.64㎡
Structure: R.C
Finish Material: Limestone
Project Year: 2012
Photographer: WanSoon Park
신태그마
도시의 시간, 그 흐름이 상대적으로 지극히 느린 한 곳에 발생시켜야 했던 건축의 사적인 또 하나의 기록이다. 대개 역사문화지구라 칭해지기도 하는 그런 분류의 장소들은 보통 긴 호흡과 폭넓은 포용력으로 우리 인식 내부에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며, 온도감을 머금은 표면 질감, 혹은 보다 인간적인 스케일의 세부 언어들이 밀도 있게 자라난 곳이다. 게다가 이른바 ‘지식인임을 자인하는’ 우리 시대 작가들의 건축적 자의식이 소극적으로 개입할수록 그곳의 풍경이 더욱 흡인력을 지니게 되는 아이러니도 장소가 지닌 미덕에 더해지는 듯하다. 그 속에서 보행자들은 도시의 드센 속도에서 비껴 나와 비로소 내비게이션의 방향을 잊고 긴장이 한껏 풀린 채 소요(逍遙)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시대의 개발 자본은 밀도 높은 보행권이라면 이제는 여느 지역이건 묻지 않고 예외 없이 독성 가득한 기운을 발하는 주체 아닌가.
전에 없이 넘치는 파워와 가속력을 장착하게 된 그 기세로 말이다. 그들은 순수함이나 소박함이 비치는 풍경을 포착하는 순간 어디든 일제히 엄습한 후 이를 갈아엎으려 들 것이고 이런 장면을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삼청동길이란 권역 또한 이제 서울이 지닌 몇 안 되는 도시걷기의 소중한 산소통이며 한편으로 낯선 공기에 예민한 솜털이란 사실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연약하고 불안한 골격을 드러낸 채 상업주의의 맹폭을 견뎌야 하는 현실 또한 엄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존재감을 흐리기는 어려운 규모로 하나의 건축 행위이며 동시에 자본 행위이기도 한 일이 맡겨진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 자칫 이 거리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한다는 오명을 벗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역 특유의 까다로운 법적 규제는 물론, 새로운 풍경이 떠맡아야 할 동시대 시민에 대한 배려, 개발 주체의 자본적 욕구 등 이질적인 현안들이 당장의 양보 없이 엉킬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다. 결국 이들의 각기 세부 타결점들이 이루는 다면체의 무게중심점을 찾아내는 쪽으로 일의 가닥을 잡아야 했다. 당연처럼 생각의 초기 가동 역시 그 진척이 한없이 더뎠던 걸로 기억한다. 갖가지 제도적 장애를 접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은 표류하는 한편 애초 불분명한 프로그램이나 기획 따위로 발상과 사고가 어떤 활면(滑面)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들여다보면 아무리 섬세한 지역이라 할지라도 그 내부에서 이차적으로 각기의 장소가 품는 활기나 정서적인 면의 진폭이 다르다는 걸 우린 안다. 지역에 흩뿌려져 있는 미시적 그레인(grain)들의 크기에 따라, 또는 그것들이 면한 가로 폭에 따라, 또 기존 건축의 갖가지 프로그램, 제스추어 등에 따라서 말이다. 작은 골목들 사이로 변함없이 감도는 고요함이나 평화로움에서부터 보다 큰 보행로가 갖는 나름의 역동성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그 지역의 세부 장소 별 정서는 여러 계통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작업이 처하게 된 부지는 이 지역의 핵심에 해당하는 속살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이의 경계부 격인 크러스트(crust) 영역에 속한다고 보아야 옳다. 즉 이 길의 도입부 쪽 일군의 미술관들을 비롯, 보다 현대적인 어법과 질서로 이미 자리 잡아가고 있는 기존 풍경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건축이 불가피하달까. 정작 우리 내면의 기억과 경험에서 ‘삼청동’이란 어휘가 울려내는 감성의 영역은 한두 켠 깊숙한 곳, 미로처럼 얽혀 굽이치는 골목길들, 또 두드러지게 급한 경사면을 따라 겹겹이 중첩된 고옥들의 풍경이 아닌가.
이 작업은 사실 각기 별개의 소유주를 갖고 있는 두 개의 연이은 대지 위에 엮어진 한 쌍의 건축물이다. 이를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에겐 어찌 보면 반전 같은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하나같은 둘, 또는 둘 같은 하나의 건축 이미지로 공동개발의 자취를 흐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거다. 닿을 듯 이어지는 이 두 매스의 계곡 같은 틈새에 끼워 넣은 pool과 그 사이로 떨어지는 빛이 이 듀오(duo)간의 긴장을 조율케 하지 않을까. 이 작업의 외적인 언어와 연관한 키워드들은 앞서 서두에서 밝혔듯 장소의 특성상 그 도도한 시간성과 질감에 관성을 부여하는 일에 대거 초점을 두었다 볼 수 있다. 건축이 추후 살아낼 시간성과 그 몸체의 물질성이란 측면에서 큰 폭의 중량감을 얹어 입혀 놓기로 한 것이다. 시간성이란 영역에서 건축의 스타일이나 시각적인 경험이 하나의 긴 호흡을 유지하는 일에 눈을 두었다면 물질성에선 세월을 두고 서서히 오염되어갈 표면 물성의 깊이감이나 질감, 온도감 등을 기대해 봤다.
또 거시적인 면모로 보아 건축의 외관 실루엣에서 혹시나 뜻과 달리 배어 나올지 모를 작가적 자의식을 한껏 희석하려는 시도를 잊지 않았다. 외관상 시인성이란 측면에서 비교적 중성적인 제스처를 갖고 되도록 후경으로 물러앉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를 통해 건축이 지역에 자연스레 함몰되는 일이 시간을 두고 점차 가능해질 것이라는 바람에서다. 하지만 좀 더 미시적인 시각에서는 도로를 휘돌아 가는 대지 경계면의 특성을 살려 조형 상 약간의 흥미를 얻어 보려 했다. 즉 건축의 하위 구체들을 모종의 anamorphic적인 구성으로 엮어 걷는 이들이나 차량의 접근 시퀀스에 따라 전체 실루엣의 다채로운 연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내부 공간 구성의 경우 ‘삼청동에서 길 잃기’라는 경험을 그대로 담아내기로 했다. 이 지역 지형의 특성상 수직 수평의 두서없는 굴곡으로 종종 길을 잃게 하는 골목길들의 미로 상 내부 구조를 그대로 투사했다랄까.
이를 위해 우측 시설의 경우 단면 전체를 관통하는 몇 개의 void를 포함, 십여 개의 재단된 레벨들을 삽입해 놓았다. 공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대개 자신이 이 건물의 어디쯤에 있는지 깨닫기가 쉽지 않은, 인식상의 가벼운 혼선을 유도해 본 것이다. 건축을 일종의 문학적 소통의 경로로 본다면 이 작업은 삼청동길이란 느린 시간, 섬약한 티슈 속에 심어진 하나의 에피소드 또는 하나의 내러티브가 된 셈이다. 그렇기에 이의 올바른 서사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어휘들의 선택을 거친 형상적 공간적 구문(構文)이 절실했던 기억을 한다. 이 작업의 지극히 사적인 주제어 syntagma가 초기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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