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근동 기운집 'Fighting House'
본문
Design: studio_suspicion
Architect: TaeSang Park, SooYoung Cho
Location: Seongdong-gu, Seoul
Area: 274.78㎡
Function: Housing
Structure: R.C
Project Year: 2017
Photographer: Ingeun Ryu
서울의 사근동은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청계천과 한양대학교가 동남으로 에워싸고 인근 야산이 북쪽에서 감싸 안는다. 한양대학교 후문에서 이어지는 사근동길이 진입로 역할을 하나, 가파른 고개를 넘는 길이다보니 여러모로 보행의 접근이 용이한 마을은 아니다. 서울의 여느 동네와는 다른 사근동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이런 지형적인 고립 때문이다. 사근동의 분위기는 차라리 과거지향적이다. 주거를 위한 베드타운과 일을 위한 상업지역을 적극적으로 분리하는 서울-수도권의 지정학적 양상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한데, 사근동은 근린이 살아있던 80년대의 주거지역을 연상케 한다. 주거의 안녕 운운하는 근린생활시설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 원래 주거지역에서는 생필품을 가까이서 구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근린을 잃은 거주민들은 대형마트를 찾고 생필품의 유통과 보관을 스스로 떠안는 기이한 소비행태를 좋아라한다. 근린에서 할일이 없으니 서울의 마을은 대개 낮이고 밤이고 조용하다.(아이들이 학원을 8개씩 다닌 이후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정학적 고립을 겪은 사근동의 경우에, 생활과 관련한 소비를 근린에서 해결해왔던 저간의 사정으로 마치 80년대의 동네처럼, 낮에는 북적이고 밤이 되서야 다 자러 들어가 조용하다. 수십 년 이상 같은 장소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과 인접한 한양대학교의 자취생들이 뒤섞인 인구분포도 이런 독특한 북적거림의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동네는 어른과 애들이, 또는 정착민과 유목민이 적당히 섞여있다. 이런 옛날동네의 개발행위가 보존과 상충하는 것은 대개 합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작은 필지는 충분한 개발이익을 담보하지 못하고 많은 경우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금전적으로 이득이어서 단독개발이 드물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답을 찾아내 필지를 합하여 법적 제한 안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한다. 필지의 병합은 도시 구조를 변경하여 골목이 사라지고 이웃이 떠나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그런데 이 지극히 합당한 자본주의적 활동 앞에서 도시구조의 보존을 외치는 낭만적인 주장은 보통 쉽게 패퇴하는 것이다. 그 패배가 나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간결했다. 139㎡의 대지 내에서 최대한의 용적을 확보하고 기능적이고 편리할 것. 세대는 직접 거주할 1개의 주인세대와 인접한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 내줄 8개의 임대세대로 구성된다. 여기에 주위 임대주택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요소로 우리가 제안한 몇가지 아이템이 더해졌다. 이를테면 승강설비 같은 것. 대지면적 대비 200%의 용적에 최대 세대수를 확보하고 근생을 주고 다락을 확보하고 틈틈이 발코니를 설치하고 승강설비를 구겨 넣으니, 개발과 보존 사이에 놓인 사근동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 될 수 있을 터였다. 합필을 통해 판을 키워야 가능했던 건축행위들이 작은 판에서도 가능하다면, 건축주들은 굳이 귀찮게 판을 키우지 않을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며 도시구조를 보존한다. 충분히 자본적이면서 동시에 낭만적일 수 있을 것이다. 개발하면서, 보존할 수 있다.
동시대의 주거환경에 대한 대응도 겸한다. 1인 주거를 중심으로 급격히 진행된 공간의 통합은 현재의 주거문화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트렌드이다. 한양대학교의 기숙사 역할을 하는 사근동에서도 두드러진 경향인데, 거실과 침실과 주방을 한 공간에 몰아넣는 원룸이라는 주거형식은 이제 단지 물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에 기대 주방과 화장실을 하나로 합치는데 도달하고 있다.(같은 장소에서 먹고 싸는 것은 같은 장소에서 먹고 자는 것만큼 효율적이다) 우리는 동시대의 주거환경이 저열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사람이 살기 위해 공간은 적당히 구분되어야 한다. 발코니를 마구잡이로 확장하니 아파트가 닭장이 되는 것이다. 가난하면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살아야하는 사정은 원룸형 오피스텔로부터 태동했다. 집에는, 작더라도 공간의 종류가 필요하다. 발코니라던가. 다용도실이라던가. 욕조라던가. 주방과 느슨하게 분리된 거실이라던가. 공간에 맞춰진 붙박이장이라던가.
Plan_1F

이런저런 고려를 했다 해도 절대적인 공간의 크기가 작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최대 세대수 확보를 위해 고만고만한 세대가 반복된다. 개성을 더하기 위해 창문을 조작했다. 위아래로 같은 평면에서도 창의 위치가 다르다. 방이 작은 만큼 변화의 영향이 크다. 이로서 입주자가 최소한의 취향을 주장할 수 있기 바란다. 자기 취향에 맞는 방이 임대가 완료되어 아쉬운 것. 지금 젊은이들의 주거환경은 이 아쉬운 마음조차 아쉽다.
일조사선과 대지형상을 따라 최대체적을 추적해 마름모꼴의 경사진 매스를 찾았다. 매스를 (치마처럼) 들춰 4층 베란다와 연결하는 개구부를 만드니 주인세대는 최상층인 5층보다 4층에 위치하는 것이 적절했다. 5층 임대세대와의 간섭을 걱정하는 건축주에게는 4층 베란다의 유용성과 개별 다락을 가진 5층 2세대의 상품성을 들어 설득했다. 정북 일조사선이 적용되는 경우 계단실은 보통, 경사면의 간섭을 가장 덜 받는 남쪽 모서리에 위치한다.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계단실이 놓이는 것이다. 우리는 집장사 시장에서 의심없이 사용되는 이러한 계획방식을 거부하고 마지막 층 높이가 나오는 한계까지 계단실을 북쪽으로 옮김으로서 전층에 걸쳐 남향세대를 균일하게 확보했다. 계단실의 구성 역시 법으로 규정된 한계치를 탐구한 결과이다. 유효너비 1.2m의 직선계단과 0.9m의 돌음계단을 조합한 다소 복잡한 구성의 계단실은 공용면적을 최소화하여 각 세대의 전용면적을 증가시킨다. 1층에 작게나마 근린생활시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계단실의 위치와 구성을 연구한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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