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을 그리다_로마가 침략하기 전, 그곳은 평화로웠다.#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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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후즈 작성일16-04-18 21:53 조회1,2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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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정

 

 

에펠탑 앞에는 푸르디 푸른 긴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주말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곳이다. 잔디를 깔고 누워, 에펠탑을 감상하면, 파리의 여유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이 긴 잔디밭의 이름은 ‘샹 드 막스(Champ de Mars)광장’이다.  불어로 champ는 들판이고,
mars는 화성이기도 하지만, 전쟁의 신 마르스를 의미한다. 오늘은 이 평온하고,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바라보며, 피크닉을 즐기는 그 넓은 잔디밭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

 

기원전, 유럽의 서북부에는 광범위하게 켈트족(Celts)이 살고 있었다.
라 텐(La Tène)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철기문명을 가지고 있던 켈트족은 처음에는 게르만 족의
침략을 피해 이동을 시작했지만, 순식간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당시 켈트족은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등에 광범위하게 거주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켈트족들이 정착한 지역이나 켈트족 자체를 갈리아, 골(Gallia, Gaul)이라 불렀다.
– 그리스 어로 부르면 켈트족이고, 라틴어로 부르면, 갈리아이다.-
이 갈리아 지역는 수십개의 부족이 무리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 중 한 부족이 기원전 3세기경
현재 파리지역에 정착하였고, 그들은 파리지라 불렸다.

 

파리지 사람들은 센 강변에서 목축과 농경, 그리고 강을 이용한 무역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얼마 뒤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인 뤼코테시아(Lucotecia)를 건설했다. 갈리아 언어로
‘늪’을 의미하는 루토(Loto)에서 비롯한 이 지명은 센 강 주변의 지리적 특성을 잘 말해 준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남긴 ‘갈리아전기’에서 “뤼테스는 센강의 어느 섬에
있는 파리지의 요새도시이다.” 라고 두리뭉실하게 적었다. 실제로 갈리아 총독으로 카이사르가
오긴 했어도, 그는 지도자 모임에 참석하기를 좋아했지, 전기를 쓸 때는 아래 휘하장수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섰다.
상당히 오랫동안 학자들은 뤼코테시아를 시테섬이라 주장했다.
시테섬 강남쪽에 갈로 로마(Gallo-Roman)유적이 많이 발굴되었기에, 자연스레 역사가들은
시테섬을 더 파보면 분명 골족의 유적이 나올꺼라고 굳게 믿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2003, 파리외곽순환도로인 A86 고속도로를 건설하던 중, 파리에서 센 강 물줄기를 따라
2km쯤 올라가면, 낭테르라는 파리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서 골족의 집단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그곳에서 집과 길, 우물, 항구, 도자기 갑옷, 금화등 여러 유적이 발견되었다.
센 강의 구불구불한 지도를 보고, 방위에 상관없이 지도를 살짝 틀면, 낭테르와 파리는
비슷한 느낌이다. 지리에 엄청 밝지 않으면, 아마 당시 사람들에겐 낭테르 섬이나, 시테섬이나
 다 비슷비슷해 보였을 것이다. 파리지사람들은 자체적으로 금화폐주조소를 가지고 있을 만큼
부유하고, 조직화 되었다. 까르나벨레 박물관(파리역사박물관)에 ‘카누’유적이 있는데,
비록 낡은 조각배지만, 당시엔 날렵하게 센강을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당시 강은 도로의
역할을 하였고, 그들은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갔으며,
강을 중심으로 점적으로 활동반경이 훨씬 넓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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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정

 

 

BC52년, 카이사르의 정복전쟁의 막바지로, 센 강 주변에 살던 파리지(Parisii)와 로마인들의
충돌이 일어났다. 골족의 평화로운 마을이 사라지는 서막이 오른 것이다.
첫번째 전투에 카이사르가 가장 신임한 라비에누스는 골족에게 대패하였다.
질척대는 늪지대에서 청동 투구와 갑옷은 진창에 빠졌고, 기병대의 말발굽에는 진흙이 달라붙어
앞으로 제대로 진격조차 할 수 없었다. 라비에누스의 수치는 복수를 불러왔고,
파리지인들은 최후의 선택을 해야 했다.

 

이 둘이 대치한 가라넬라 평원은 멧돼지와 토끼를 사냥하는 골족의 사냥터 였지만,
이날은 동족의 생존을 위해 전투를 치러야 할 장소가 되었다.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싸우는 로마군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골족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다.
하지만, 평원에서 다년간의 전쟁과 조직적인 싸움에 익숙한 로마군대를 상대로 승리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골족의 무거운 칼은 로마군의 가볍고 날렵한 칼에 밀려났다.
로마는 이 전쟁에서 이겼지만, 남은것은 없었다. 이미 골족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도시를
파괴해 버렸다. 로마에 정복당하느니, 스스로 파괴하는 길을 선택했다. 
로마인들은 골 족의 목숨을 건 방어에 감명받아 이 전투가 치러진 평원을
‘전쟁의 땅(Champ de Mars)이라 명명했다.  – 이후 이곳은 군사 훈련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여수엑스포의 한참 형뻘되는 2회 세계박람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1회는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Hyde Park)내 지어진 수정궁이 첫 엑스포의 시작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이곳에 프랑스의 상징으로 만들어 지는 구조물이 들어섰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세계박람회 출입문으로 만들어 진 것이긴 하지만,
나는 에펠탑을 볼 때마다, 그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부족을 지키려 했던
골족 전사들을 위한 충혼탑이라는 생각이 든다.

 

밝은 햇살아래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기는 피크닉,
지하 깊은 땅 속에 잠들어 있는, 골 족 병사가 지키고 싶어하던 삶일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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