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을 그리다_ 원형경기장의 뒷 이야기#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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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후즈 작성일16-03-28 12:13 조회1,0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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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현정

 

 

요즘 19금 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화를 보면, 다 큰 어른인 내가 보아도 눈을 질끈 감을 때가 종종 있다.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극 내용의 일부 장면이라고 하지만, 칼이 사람 몸을 통과한다던지, 목이 잘려   
떨어지면서 피가 솟구치는 장면이 나오면, 저절로 고개가 돌려진다.
이번 회 차에 쓸 이야기가 " 왜 이런 스포츠가 필요했을까? "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쓰기 위해선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글과 그림을 통해 깊숙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

 

그.런.데   내가 그 폭력적인 19금 상상의 세계가 싫다는 것이다.

 

                                                       *

 

사람들의 유희를 위해, 평온하게 자기나라에서 잘 살던 짐승들을 강제로 끌고 와 사람들과 싸우게 했다.
싸우지 않으면 굶겨서 화를 돋우어서 무장된 사람과 싸우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검투사들은 어떠한가? 대부분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나왔다가 끌려온 전쟁포로였다.
물론인기와 환호에 열광하여 자원해서 검투사가 되는 자유인도 있었다. 검투사가 지속적으로 승리하면
그에게 부와 명예가 돌아오기도 하지만, 고대 로마 사회 속에서 검투사라는 신분은
노예 중 가장 낮은 최하 등급이였다. 살아남아 자유인이 된다고 하여도 그들은 일반 해방노예와 달리
로마시민이나 라틴인이 될 수 없었다.​

 

검투사가 되는 과정은 혹독했기에 스스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훈련을 따라오지 못하는 검투사는
베스티아리(Bestiarii)라는 짐승과 싸우는 투사가 되는데, 이들 중 그 훈련과정과 대결이 얼마나 싫었으면
스스로 자살하기도 하였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세네카가 기록에 남겼는데, 마차로 이송 중
조는 척하며 마차바퀴에 머리를 들이밀어 자살하기도 했고, 동료끼리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오자,
싸우기 싫었던 검투사들은 서로 목을 졸라 자살하기도 했다고 한다.​

 

앞서 검투사들이 영화주인공들 보다 살집이 있다고 하였는데, 지방이 있으면 출혈이 적기 때문이였다.
이를 위해 주식으로 검투사들이 먹은 것이 보리였다. 고대 로마사람들은 보리를 먹으면 빨리 살이 늘고,
싸움 중 출혈이 있어도 오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당시 로마인들의 주식은 밀이였고, 보리는 주로 가축용 사료였다.
그들의 주식은 영양면에서는 훌륭했지만, 가축사료로 사용되던 것으로 매일 식사를 했다.
당시에 검투사를 조롱하는 말로 '보리먹는 놈들(hordearii)'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그 단어가 참 껄끄럽다.​

 

경기장의 건설은 현대 정치인들과 같은 이유로 만들어 졌다. 
도시의 미관을 증대시키고 도시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였다. 건설과정 동안 실업은 줄어 들었고,
완공 후 경기장 주변의 상가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

 

로마가 멀리 진출할수록 정치가들은 시민들에게 로마의 힘을 과시해야 했다.
그러한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검투경기였다. 경기에 쓰인 동물들은 대단히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코끼리는 북아프리카, 하마는 누비아에서, 사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공수해 왔다.
이 이국적인 동물들은 로마인들이 정복한 지역을 상징했다. ​

 



로마가 정복한 여러 도시에 원형경기장이 생겨났는데, 짐승을 공수하는데 넉넉치 않은 도시는 사자대신
이로 인해 경기시간이 길어지고 다소 느리게 진행되기도 하였다.
경기 후 죽은 동물들은 그냥 버려지지 않았다. 가죽은 시민들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고, 고기는 우리에 갇혀있는
또 다른 맹수들에게 먹이로 주었다.

 

                                                                                *


현재 파리의 경기장을 둘러보다 보면, 한 켠에 반원형 작은 창에 쇠창살이 끼워진 곳이 있다.

워낙 작아 신중하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환한 운동장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그 안에는

2000년 전 영문 모르고 끌려온 어린 사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장소이다.


 

 


파리 아레나의 한 귀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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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정

 

 

로마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면, 초기 기독교인이 경기장에 끌려 나와 기둥에 묶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맹수의 먹이가 되는 형벌을 받는 장면이 있다. 물론 일부 기독교인들이 이런 극형을 받기는 하였지만, 사실
로마말기에 이미 기독교는 많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상태이기에, 실제 이러한 극형을 받은 대상은
산적이나 해적들이였다. 로마는 제국 전역의 치안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로마의 고속도로 주변에서
도둑질은 어마어마한 범죄로 그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만 했다. 

 

이렇게 잔인하게 피를 흘리는 리얼리티 쇼는 로마시민들에게 제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당연히 흘려야 하는
대가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었다.

 

황제에게 있어서 원형경기장은 '실시간 여론조사'와 같은 곳이자, 원로원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시민들이 황제의 등장에 우레와 같은 환호가 있으면, 그의 정책이 좋은 것이고, 야우나 침묵이라면 황제를
맞이한다면 실패 중이라는 즉각적이 반응을 알 수 있는 곳이였다. 만일 지속적으로 시민들에게 평판이
좋지 못하다면, 원로원이 황제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명분이 서기도 하였다.
황제는 시민가운데 1인자이지, 주권자인 시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에 불과하다.
만일 엘리트 집단인 원로원이 탄핵결의안을 채택하거나, 원형경기장에서 시민들이 야유를 퍼붓거나,
로마군단이 충성서약을 거부하면, 황제는 순식간에 보통사람이 되는것이였다.

 

황제는 이러한 균형을 잘 맞추어야 했고, 경기 관전에 참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여러모로 나았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잔인한 검투경기를 싫어해 시민들 사이에 평판이 좋지 않았고, 카이사르는 그
시간이 쓸데없다고 생각해 참석은 하되, 관전을 하지 않고, 주로 편지 쓰는데 그 시간을 이용했다고 한다. 

 

                                                        *

 

로마의 권력유지기반은 시민들의 지지였다.
제국의 형성과 전성기에는 그 공공성이 건강했지만, 제국 후반으로 갈수록

쾌락과 눈앞의 즐거움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통치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시민들을 '우민집단'으로 만들었다. ​

 

정치인들은 이렇게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을 대중들과 공유하며,
시민들 개개인들에게 자신들도 권력의 단 열매를 함께 맛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심어 주었다.
공중목욕탕과 원형경기장,

그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은 비판적인 시민정신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장소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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