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의 보물같은 한옥 찾기_ 삶을 담아내는 변주곡, 경북 한옥의 다양한 형태(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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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후즈 작성일16-03-21 19:12 조회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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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아내는 변주곡, 경북 한옥의 다양한 형태 (1)

 

 

들어가며


필자는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변주곡(Variations on a Rococo Theme Op.33)을 좋아한다.
1876년 작곡된 이 곡은 첼로와 실내악단을 위한 것으로 주제선율과 7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첼리스트 피첸하겐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그의 제안을 많이 받아들여
독주부를 만들었고 심지어 그에 의해 임의로 변경된 부분도 있다는 사연을 가진 곡이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주제선율은 전원을 산책하는듯한 느낌을 주며 시작되고, 다른
악기들과 선율을 주고받으며 종종걸음으로 뛰다가도 아주 여유있고 느린걸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첼로가 갖는 음역을 아주 폭넓게 사용하며 묵직한 첼로특유의 음색을
들려주다가도, 지판위에서 현란한 독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경상북도 지역의 한옥은 기본적으로 ㅁ자형 배치를 가진다. 물론 인접하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ㅁ자형 배치를 가진 가옥이 다수 존재하며, 경북지역에도 건물 한 동만
별개로 존재하거나 여러 건물들이 분산되어 배치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경상북도
지역에 위치한 한옥 중 많은 비율의 가옥이 ㅁ자형 배치라는 주제곡을 가지고, 각각
주인의 생각과 삶의 모습에 맞추어 조금씩 변형되고 덧붙여지며 다양한 변주곡이
되고 있다. 작은 규모와 단순한 형태의 ㅁ자형 가옥부터 아흔아홉칸의 규모를 자랑했던
복잡한 형태의 가옥까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청송 청송읍 청운동성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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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마당/ 대문/ 안마당 ⓒ 박정연 

 

조선 고종 때 행장능참봉을 지낸 임춘섭이 살았던 집이며,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
172호로 지정된 가옥이다. 한옥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가옥들
위주로 살펴보면 좋다. 그만큼 의미가 있거나 독특한 공간을 가진 가옥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측면이 3칸에 지나지 않는 이 작은 한옥은 어떤 이유로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을까.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안마당을 가진 한 칸 뜰집,
ㅁ자형 한옥의 가장 근간이 되는 집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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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연

 

 

초가로 이루어진 대문을 들어서면 3x3칸을 기준으로 한 칸이 덧붙여진 성천댁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공간에 사랑방과 안방, 대청과 부엌, 마굿간, 창고가 자리잡고 있으니 국내에서
가장 밀도있게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가옥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의 형태는
외부인이 침입했을 경우 방어를 하거나, 산지가 많은 경상북도 지역의 특성상 겨울에 강한
추위가 있을때 가족들은 물론 가축들까지도 온기를 함께 할 수 있어 유리한 형태가 된다.​

 


한옥은 처마를 가지고 있다. 건물의 벽에서 1미터 전후의 처마가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안마당의 넓이보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면적은 더 작아지게 된다. 성천댁에서는 이 폭이
채 60cm도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면적은 작지만 부엌쪽의 지붕높이와 대청의 지붕높이가
차이를 가지기 때문에 대청으로는 많은 자연광이 유입되게 된다. 풍수와 자연의 기운을
읽으시는 분들은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다가 지붕 사이의 작은 틈으로 모여서 떨어지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전해진다고 이야기하며, 아들을 낳고자 하는 분들이 성천댁에서 묵고 가면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다. 이러한 사연을 가지기도 한 성천댁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간을 가진 ㅁ자형 한옥의 근간이 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상주 낙동면 양진당

 

 

e743dfaf588fee4e022e8ac86a81431e_1458553                                                                               상주 양진당 전경 ⓒ 박정연

 

 

상주 양진당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가옥이다. 중요민속문화재보다도 격이 높은 보물로
지정된 것은 가옥이 특별하고 가치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진당은 위에서 내려다볼때
ㅁ자형으로 만들어진 가옥이며, 앞서 살펴본 성천댁이 3칸x3칸의 규모라고 하면 양진당은
정면 9칸x측면 7칸 규모를 가졌기에 훨씬 규모가 커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8년에 보물로
승격되기 이전에는 가옥의 전면부가 없어서 ㄷ자형을 하고 있었으나, 전면부를 추가로 만들어
원래 ㅁ자형으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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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연

 


양진당은 검간(黔澗) 조정(趙靖)이 1626년 안동의 천전동에 있던 가옥을 옮겨 지은 것이며,
현재까지 풍양조씨 장천파 문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는 가옥이다. 조정은 1592년부터 1597년까지
임진왜란을 자세히 기록한 ‘임진란기록’을 썼으며, 양진당 인근에 오작당이라는 가옥을
짓기도 했다. ㅁ자형으로 구성된 가옥이 필요한 공간이 늘어나게 되면 양진당처럼 안마당이
넓게 계획되어지며, 전면과 측면의 규모를 늘리게 된다. 이처럼 ㅁ자형 구성이 크게 확대되는
형태로 안동 서후면의 재사건물을 들 수 있는데, 재사는 묘와 가까운 곳에서 묘제를 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 문중의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방과 넓은 누각이
요구된 경우이다. 안동김씨 태장재사는 튼ㅁ자(ㅁ자의 모서리 부분이 연결되지 않은 형태)로
배치되어있는데, 방은 전면 9칸, 누각은 전면 7칸이나 된다. 안동권씨 능동재사와 숭실재 역시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를 가지는데 이 건물들의 마루와 누각은 100여명이 족히 앉을 수 있는
넓이를 가졌다.​

 

 

양진당이 가지는 특징으로는 건물을 땅에서 약 1m정도 높여서 지었다는 것인데, 뜨거운 여름의
지열이 덜 전달되도록 하는 남방식 가옥의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과 가까운 저지대에
위치해 하천이 범람하는 경우 가옥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한옥의 경우 디딤돌에서 툇마루로 오를 수 있으나 이곳 양진당의 경우 계단을 통해
올라야 툇마루에 오를 수 있는 높이를 가졌다.​

 

 

봉화 봉화읍 해저리 만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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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안마당/툇마루 박정연

 

 

해저 만회고택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 169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순조30년(1830년)에
급제한 후 우부승지를 지낸 문신 김건수가 살던 집이며, 3.1운동 직후 유림들이 심산 김창숙을
중심으로 이 가옥에서 모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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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연

 

 

성천댁에서 양진당으로의 발전이 악곡의 연주시간을 늘리거나, 빠르기를 바꾼 정도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가옥들은 기교가 더해지고 독특한 표현이 추가된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봉화군에는
만회고택보다 더 잘 알려진 만산고택이라는 가옥이 있는데, 그 가옥이 아닌 만회고택을 소개하려는
이유는 만산고택에 비해 조금 더 독특한 배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건물이
연결되어 ㅁ자형 건물을 만들며, 여기에 T자형의 사랑채가 더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해졌다’
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건립당시부터 이러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건물이 추가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중문간채도 갖춘 큰 규모의 가옥이었다고 하는데, ㅁ자형 가옥에서
전면부가 확장되어 큰 규모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공간을 갖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건축법이 있듯이 조선시대에도 건축관련 규범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세벌대 기단은 궁궐에만 사용하고 일반 건축물에는 두벌대 기단을 사용해야 하며,
두리기둥(둥근기둥)은 사치스러우니 이 또한 궁궐에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규범이 강하게 적용되지 않던 시대에 짓거나, 규제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내세워 자신의 가옥을 멋스럽게 짓고자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만회고택은 육면체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이어서 세벌대 기단이라 명확하게 부를 수는 없지만
사랑채 부분은 세벌대에 해당하는 높이를 가진 기단에 세워졌으며, 두리기둥도 다수 사용되었다.
청풍헌이라 이름붙여진 사랑채는 전면에 누각을 가지고 있는데, 누각은 구들을 들일 수 없어서
겨울철에는 추운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곳에서는 누각도 창호지를 바른 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회고택의 누각은 나무 판문을 설치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여름철에는 문을
다 열어둔 채로 생활하고, 겨울에는 사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캄캄하더라도 문을 닫은채로
둘 수 있도록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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